236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1/2 – 재커리 D. 카터236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1/2 – 재커리 D. 카터1922년 봄 케인스는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났다. 유럽 각국의 원수, 주요 은행가, 재무부 관리들이 종전 후 가장 중요한 재무회의로 남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노바에 모였다. 이는 베르사유 조약 이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과 패전한 독일이 처음 만나는 자리로 유럽에서 가장 성대한 규모로 열리는 외교행사(제네바 회의)였다. 이어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러시아 사회주의 정부까지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었다. 뉴욕 맨체스터 비엔나 등 신문사들은 케인스에 675파운드(현재 가격 환산액 45,000달러)라는 엄청난 보수로 회담 내용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저널리즘은 사람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더 고결한 일을 처리할 만한 에너지가 없어지는 거야.” 제네바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의 각료 중 한 명은 바이마르공화국 교장관 발터 라데나우를 타락한 대머리 유대인으로 불렀고, 소련 외무장관 게오르기 치켈린(동성연애자)은 타락한 인간으로 조롱받았지만 그와 크라신을 제외한 러시아 대표단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미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렸지만 전쟁 초기 제정 러시아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줬다. 그런데 혁명으로 탄생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키 정부는 빚에 대해 발뺌했다. 이에 각국 각료들이 제노바에 집결하기로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 정부가 회의에 참석하려면 먼저 과거 차르 정권이 맺은 금융계약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혁명정부든 아니든 부채는 인정받아야 했다. 제노바 회의는 결국 사회주의에 관한 총투표로 마무리됐다. 케인스에게 이는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처사였다. 사회주의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계몽주의적 진보주의라는 폭넓은 계통 안에서 논의하고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였다. 진짜 위협은 국가의 영광을 위해 국제적 화합을 거부한 사람들, 즉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움직임이었다. 케인스는 소련 정권의 망상적 잔혹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1923년 12월 출간된 『케인즈의 화폐개혁 법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충격적인 개념으로 가득하고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인 서적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건전한 경제적 판단의 근거가 된 금본위제는 평화와 번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시대정신 및 시대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는 미개한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19세기 자본주의가 신성시했던 교의를 하나씩 겨냥했다. 케인스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의 결말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 국가가 국내 정책을 통해 완전 고용을 창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한 나라의 이자율을 이웃 나라의 이자율과 비교해 결정하는 경제적 힘이 필요하지 않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한 케인스의 제자들에게 이 책은 삶 전체에 대한 철학을 의미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세계 곳곳에서 케인스의 사상을 직접 이행해 나갔다. 그런 학생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벤스산 바트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에게 <일반이론>은 경제학 이론서라기보다는 사유와 유쾌한 삶을 위한 하나의 선언문이었다. 그를 만나본 사람에게는 지성과 흥을 겸비한 천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일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인류의 건전함과 완전한 정신을 믿어야 할 합리적인 토대이자 윤리적 호소문이다 <일반이론>의 또 다른 목적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정치기질로 확실히 변모한 이른바 케인즈주의라는 사상을 역사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케인스와 미국의 연결고리는 언제나 복잡하고 불행했다. 신흥 패권국인 미국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확립하기 위해 <일반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을 뿐 케인스의 반제국주의적 사상에는 사실상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가 숭배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사색적 반추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는 전문적인 수학으로 간주하려 했다. 그래서 케인즈주의라는 사상의 역사는 그 약속과 남용 면에서 모두 미국 권력층의 지적 역사로 볼 수 있다. 케인즈주의는 케인즈 자신도 예상치 못한 삶을 스스로 떠안았다. 결국 하나의 단어, 즉 모든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쉽고 충분하며 포괄적인 하나의 단어… 1장 케인즈, 돈을 찾으러 런던에 온다. 케인스는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논쟁가였지만, 체력의 약함에 항상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과로와 운동 부족으로 감기와 독감으로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시대(La Belle Epoque), 도금 시대(The Guilded Age)의 문화적 풍요는 제국의 산물이었다.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만제국, 심지어 청년기였던 미국까지 군사력을 통해 다른 대륙의 자원과 그 사람들을 장악했다. 1910년 영국 언론인 노먼 에인절은 위대한 환상에서 20세기의 복잡하게 얽힌 국제통상관계로 인해 전쟁이 경제적으로 비이성적인 상황이 됐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틀렸고 특히 상황을 오해하고 있었다. 비이성적인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14년 7월 28일 민족주의에 불타는 유고슬라비아의 한 십대 소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했고, 제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러시아까지 군대가 동원됐다. 8월 1일 토요일, 영국 재무부에서 10년간 근속했던 바질 브래킷은 케인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영국의 안전을 위해 당신의 두뇌를 선택하고 싶고 당신도 그 과정을 즐길 것입니다. 만약 월요일에 저와 만날 시간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때쯤이면 모든 것이 결정된 것 같아 두렵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도 전시 체력을 100%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신용과 자신감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 로이드 조지. 8월 3일 월요일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분쟁의 범위가 급격히 넓어졌다. 현장에 도착한 케인스는 런던의 재정 출혈을 막을 계획을 세웠지만 은행가가 제안한 내용과 정반대였다. 즉, 현금을 금으로 바꾸려는 외국인은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