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교회(feat.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 현대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와 질 드로즈가 질문하는 reel부터 기독교인 신앙과 신뢰의 실마리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꽃으로도 불렸던 장 보드리야르의 핵심 명제입니다. 워쇼스키 형제가 세기말 메이킹한 워너브라더스 영화 ‘매트릭스 더 매트릭스’. 이들은 영화 시작점부터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에 보드리야르의 주요 저서였던 ‘시뮬라시온 Simulation’을 등장시킬 정도로 보드리야르를 오마주했습니다.영화 ‘매트릭스’ 초반 주인공에게 첫 방문객에게 전할 물건을 찾으면서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시온 Simulacreet Simulation’이 등장합니다. 후에 워쇼스키는 이 신이 보드리야르에 대한 오마주였다고 말합니다.그래서 보드리야르에게 자신들 영화의 진정성은 당신의 사상에서 비롯됐다며 자신들의 대표작이 되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직접 들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보드리야르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보드리야르의 독창적인 ‘시뮬라시온’ 이론은 대중생산과 매스미디어, 인터넷과 사이버문화의 시대를 해석하는 탁월한 이론틀로 받아들여져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문화이론과 철학, 미디어, 예술이론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습니다.보드리야르의 독창적인 ‘시뮬라시온’ 이론은 대중생산과 매스미디어, 인터넷과 사이버문화의 시대를 해석하는 탁월한 이론틀로 받아들여져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문화이론과 철학, 미디어, 예술이론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습니다.여기서 잠깐 어디에서 들은 적은 있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이데올로기”란 단순히 너무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이 옳다고 진실이라고 또는 진리라고 생각하고 규정함으로써 복수 이상의 인간이 허용하거나 믿으려 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세운 언어에 집약하고 공유하는 사고 덩어리에 해당하는 거죠.더 지적해야 할 또 하나의 흐름 20세기 중후반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체 deconstruction”로 상징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허상에서 폭로하는 부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 흐름의 핵심 내용은 인간의 언어 체계가 어떻게 실재 reel을 전달하는 모순되는 자의적인지에 시작되고 실존을 거둔 도구가 되지 못하는 것과 오히려 그러한 체계에 인간이 함몰하고 말 현실에 끝까지 떠넘기사조여기서 잠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데올로기란 단순히 초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인간이 옳다고 진실이라고 또는 진리라고 생각해서 규정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인정하거나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세워 언어에 집약시켜 공유되는 사고뭉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죠.또한 지적해야 할 또 다른 흐름으로 20세기 중후반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체 deconstruction으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허상으로 폭로하고 부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 흐름의 핵심 내용은 인간의 언어체계가 얼마나 실재 reel을 전달하는데 모순되고 자의적인지에 시작하여 실재를 담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오히려 그러한 체계에 인간이 함몰되어 버리는 현실에 대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조오늘날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란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합니다.이 악의 세력(?)힘(?)은 괴물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인류 전체를 덮고 등장한 어디에도 어떤 가치와도 환원이 가능한 화폐(자본)라는 하나의 코드화된 도구로 설계된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새로운 영토화하고 정착한 가치 세계를 말합니다.자본주의라는 단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거대한 물신의 힘을 배경으로 나오고,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제기된 지금은 장·보드리야르 당시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세상을 새로 개편하는 어떤 이념으로도 통제가 쉽지 않아 보이는, 지금 여기 세상에 더 기묘하게 등장한 현상인 가치 체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른바”hyperreel가상 세계”라는 것입니다.이 악의 세력(?), 힘(?)은 괴물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인류 전체를 뒤덮고 등장한, 어디에도 어떤 가치와도 환원이 가능한 화폐(자본)라는 하나의 코드화된 도구로 설계된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새롭게 영토화하여 정착된 가치 세계를 말합니다.자본주의라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물신의 힘을 배경으로 등장했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제기되었던 지금은 장 보드리야르 당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여 세상을 새롭게 재편하는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통제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이곳 세상에 더 기묘하게 등장한 현상이자 가치체계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른바 ‘hyperreel 가상세계’라는 거죠.또한 상기의 처음에 소개된 명제에서 이데올로기는 먼저 설명되었다면 함께 언급되고 있다”시뮐 라크르 simulacre”이란 무엇인가요. 이는 바로 이 괴물 같은 가상 현실을 악의 세계(?)이라고 폄훼하는 데 사용되는 같은 용어로, 가상 현실에 관련된 모든 thing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는데, 여기에서의 멸시와는 원본, 즉 진실, 진리에 해당하는 실재 reel이 있어 가상 현실의 시뮐 라크르는 그 원본, reel의 사본 즉 가짜라고 규정하려는 데 있습니다(그러나 보드리야르는 “시뮐 라크르”의 의미가 사실상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면 폭로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원본을 우리는 알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규정하고 버린 사본은 정의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시 뮤라 쿠르는 원본 없는 세계의 또 다른 원본이라고 합니다).여기서 가상 현실 시뮐 라크르를 이유 없이 비하한다며 특히 이념에 심취한 사람들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다시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가상 현실의 시뮐 라크르 simulacre가 실재 reel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이 질문은 영화”매트릭스”의 제작자로 감독 워쇼스키 형제에 대한 질문에서도 있겠지만 오늘 가상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에도 던지는 질문입니다(영화에서 “시온 Zion”으로 명명된 다른 연장된 공간을 reel에 대변해서 소개하면서).이 질문은 더 들어 당신이 그 시뮐 라크르 원본이라고 모두 믿는 실재라는 것이 사실 이념이라는 데 심취하고 있는 또 하나의 가상에 갇혔을 것이다(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미 그런 억견 doxa가 정착함), 이 또한 실존을 자신의 욕구를 각색한 허상은 아닌지 다시 한번 봐야 하면 더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실존 즉 진실과 진리가 분명하다고 규정할 확신할수록 당신은 이미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오늘 살고 있는 현대 철학자 스라우오이에·지지에쯔크 SlavojZizek이데올로기에서 자유가 아닌 우리의 현실을 명증에 폭로하게). 이런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실, 진리라고 믿는 언어 체계로 지어진 세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의 덩어리가 실재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의 기대대로 가상 현실, 실리 뮤라 쿠르를 그것과 대비하여 만들어진 사본의 비 진리 또는 진실의 체계, 사본, 짝퉁 낙태약과는 결코 볼 수 없다는 보드리야르의 통한의 권고죠. 보드리야르는 해체 deconstruction로 대변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이 사고에서 보다 최근의 현대 사상의 사유하고 정리하다 보니 reel은 당신들이 언어로 이해하는 진리,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그것이 없는 것이지 결코 완전하지도 무오도 있음에서 한번 깨닫고 그 허상에서 벗어나고 금세에서 예외 없이 당신들까지 힘을 얻고 있는 이 진기한 가상 현실과 똑같이 말에 의지가 진실이라는 이념 또한 있다. 그것은 누구나 비하하려는 가상 현실과 결코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음영화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의 허상에 깊이 뿌리박은 영화입니다. 실재는 다른 공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가상현실의 허상성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AI가 지배하는 세상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측면의 교훈도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더 중요한 문제로 실재의 실재성부터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드리야르가 워쇼스키 형제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지나친 확신 때문에 언어에서 도그마된 독해를 의미하는 문자 주의에 함몰하고 이데올로기를 reel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떴다 자신의 욕망의 장에서 가상 현실을 헐뜯는 장소까지 가이중 이탈 현상에 빠진 현대인들로.본래의 장소를 찾는 항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기독교인에게는 reel인 예수를 아는 작업이란 말에 의한 수용에 천착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아멘 기계로 세운 모순, 그리고 이미 구제 받은 사람으로서 정해진 being의 정체성이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함정에서 벗어나고 reel을 구하는 과정 속으로 도상의 불확실성 속에서 새롭게 질문할 의뢰한 becoming상태로 계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진정한 성화인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됩니다. 풍부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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